△1983년 출생 △검정고시로 서울대 입학 △서울대 물리 천문학부 졸업 △서울대 수리과학부 석사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 입학 첫해 '리드 추측' 증명 △미시간대 박사 △클레이수학연구소 클레이 펠로(2014~2019) △프린스턴대·프린스턴고등연구소(IAS) 베블런 펠로(2014~2017) △IAS 방문교수(2017~2019) △IAS 페른 홀츠 방문교수(2019~2020)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2020~현재) △KAIST 부설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스칼라 교수(2015~현재)
50년간 지구 상 누구도 풀지 못한 수학계 난제 '리드 추측'을 대학원 때 증명하고, 만 29세에 세계적인 미국수학회 저널에 대수 다양체 논문을 실은 허 교수는 일찌감치 세계에서 톱클래스 수학자로 통했다. 스탠퍼드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허 교수 공식 이력서는 유명 저널에 발표한 논문과 세계적 수상 경력 목록이 꽉 차 있어 A4용지로만 12장이 넘을 정도다. 이 모든 일이 고작 10여 년 만에 일어났다. 허 교수는 수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수학과 박사과정 진학 첫해, 1968년 이후 난제였던 '리드 추측'을 증명한 수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요한 폰 노이만, 쿠르트 괴델,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세기의 두뇌가 거쳐간 프린스턴고등연구소(IAS)에서 30대 나이에 '롱텀 펠로우'를 제안받은 역사상 3인 중 1인.
또 다른 난제 '로타 추측'과 '다울링-윌슨 추측' 증명에 기여하면서 발표 논문 하나하나가 묵직한 질량을 가지게 된 수학계의 라이징 스타.
허준이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39)를 이해하는 몇 가지 열쇠들이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이공계생이었던 허 교수를 세계 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작년 일시 귀국한 허 교수는 서울 동대문구 KAIST 서울캠퍼스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에 머무는 중이다. 최근 허 교수는 "조합과 기하라는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사유의 대상 사이에 허 교수가 건설한 '다리'는 인류의 이해를 지속해서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허 교수의 수상은 한국 수학계 위상뿐 아니라 호암상 자체의 권위를 증진시킬 것이며, 역사는 그의 결과들을 기억할 것"은 평을 받으며 상금 3억 원의 삼성 호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달 대학수학회가 개최한 연구발표회의 기조강연자도 그였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90·1970년 필즈상 수상) 수업을 들으며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대학을 6학년까지 다녔다. 천문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F'가 많아 11학기를 다녔다(웃음). 히로나카 교수님이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하셨는데 이미 워낙 세계적 수학자이셨다. 당시 수학이나 물리 전공하던 학생 가운데 수강 신청하지 않은 학생이 없었을 것이다. 서울대 자연대 27동 대형강의실에 200명 넘는 학생이 꽉 찼다. 그러나 두 번째 수업에 딱 절반인 100명, 세 번째 수업에 다시 50명으로 줄더니 마지막 강의에 5명 남았다. 많은 학생들이 드롭(drop·수강 철회를 뜻하는 은어)한 이유는 강의가 말도 못 하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돈된 수업과 거리가 있었다. 내겐 터닝 포인트였다.
전공도 아니면서 노벨상에 준하는 필즈상을 받은 교수의 강의를 이해했다니, 숨겨진 천재성이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이해를 못 했지만 꾸준히 강의를 들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10대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게다가 이공계를 나왔으니 대학 시절 꿈은 과학기자였다. 히로나카 교수님의 1990년대 베스트셀러 책 '학문의 즐거움'을 중학교 시절 읽었는데 기자가 되면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첫 번째로 인터뷰이로 삼겠다는 다짐으로 수업을 들었던 거다